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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런치

Etc / 2016. 3. 27. 15:45

크런치(crunch)는 crunch time이라는 숙어 ‘극도의 긴장이 필요한 때’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게임업계에서 개발 막바지 일정 기간 동안 야근과 철야를 밥먹듯이 해 개발을 완료해내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오늘부터 1개월간 크런치 모드입니다”라는 말은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매일 야근 합시다”라는 뜻이다.

이 크런치에 대해서는 업계 내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의견이 있어왔다. 워렌 스펙터는

[…] “크런치는 창조적 매체에서 미지의 요인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게임 개발은 항상 미지로 가득하기 때문에 퀄리티를 높이려 분투하는 개발사에서는 항상 크런치를 하게 돼요. […] 30년간 게임을 만들었는데 전 아직도 크런치 없이 인정할 만한 수준의 게임을 만드는 마법사는 본적이 없어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고, 스타독(Stardock)의 데릭 팩스턴은

“게임 업계의 기업들과 사람들은 크런치에 써버린 시간을 훈장처럼 자랑하는짓을 그만둬야 해요. 크런치는 망가진 업무 절차와 관리의 결과입니다. 크런치로 직원들이 희생됩니다. 전 왜 크런치가 다른 업계에서는 이슈가 되지 않는데 왜 게임회사들에만 이슈가 되는지 묻고 싶군요.”

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며, 개인적으로 만나본 여러 개발자들도 크런치의 필요성이나 효과에 대한 다양한 증언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가마수트라에 올라오기 시작한 게임 개발 성과 측정 프로젝트(한국어 번역)에서 분석한바에 따르면

우리의 결과물은 명백하게 크런치가 비범한 결과물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실제로는 크런치는 항상 게임을 덜 성공적으로 만듭니다. 프로젝트가 크런치를 이용해서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면, 발밑의 구덩이가 더 깊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이라고 확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에서도 언급하지만,

한편, 경영학에서는 방대한 규모의 입증된 연구결과를 통해 연속된 초과근무는 건강생산성, 인간관계, 사기, 조직 몰입도,의사 결정 능력을 망치고 심지어 알콜 남용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있습니다.

대량의 입증된 경영학 연구에서는 근로자들의 총 생산성이 겨우 몇 주만 초과근무해도 음수로 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을 일간 8시간에서 9시간으로 늘리면 총 생산성은 무려 16-20%가 감소합니다. 겨우 몇 주만 50시간을 근무해도 해당 기간 동안의 총 누적 생산량이 주당 40시간 근무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줄어듭니다. – 추가적인 주당 10시간의 근무는 실제로는 근로자들의 총 생산량을 감소시킵니다. 동시에 근로자들의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인간관계를 목 조르고, 제품의 결함률을 높입니다.

다른 모든 산업에서는 초과 노동이 생산성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만 작용을 하는데, SW 업계에서는 이 크런치가 효과가 있다는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게임 개발의 품질이나 생산성, 열정에 대한 문제 이전에 기본적인 개발자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2013년 8월 게임 산업 종사자 실태조사에서 출퇴근 시간과 평균 야근 시간을 조사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특히나 게임산업이 젊은 개발자들의 열정을 빨아먹는 산업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산업들처럼 안정적이고 평범한 산업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종사자들의 삶이 안정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개발자 스스로 맞추기에 앞서) 기업이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 열악하다던, 흥행 산업의 대명사인 영화 업계도 오랜 부당 노동(초과 근로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던)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으로 노조를 구성했으며, <국제시장>은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해 그간 스탭들을 착취하던 관행을 깼다. 심지어는 만화계에서도 처우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개발자가 게임업체를 다니면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저녁을 먹는 그런 삶을 누리는 것이, 결국에는 개발자를 재충전하게 해주고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안정적인 직업’이 될 때 젊은 지망생과 개발자들이 개발자로 업계에 입문할 꿈을 꾸고 살아가는 그런 환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흥행 성공률이 낮다는 이유로 개발자들을 싸게 초과 근로를 인사 고과에 반영하면서 갈아 넣어서는, 단기적으로는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험 있고 실력 좋은 개발자를 업계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는다.

당장 크런치를 없앨 수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런 잘못된 개발 환경으로 인해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어떻게 개선하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는 고민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게임 개발이 ‘산업’이 된지도 이제 20년이 되어 간다. 생각을 해볼 때다.


출처 : http://nairrti.works/2015/02/27/c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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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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